경제로 보는 10대의 분노
기타 2008. 7. 28. 09:37분석해 보고자 한 글이지만 내가 의미를 갖는 글귀는 그와는 동떨어진 시민 또는
유권자로서의 의사결정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도대체 왜 이리 됐을까?
편집국장의 편지 2008/05/28 13:54
자주 가면서도 또 갈 때마다 놀라운 곳이 대형 할인점이다. 그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뿐인 인간에게 필요한 물건이 이다지도 많다니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
품목도 품목이지만 값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이름도 생소한 먼 나라에서 건너온 물건이 많은데 생각보다 헐값이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이익을 남길 수 있을지 짐작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아이들이다. 우리 집 아이건 남의 집 아이건
이토록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을 보고도 주눅 드는 법이 없다.
그들은 마치 매우 오래전부터 이같은 대량 소비사회에서 살아온 듯 대형 할인점 매장을 익숙하게 누비고 다닌다.
라면 하나만 해도 종류가 그토록 많은데 그들은 망설임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상품을 집어 든다.
왜냐고 물으면 막힘없이 자기가 그 물건을 어째서 선택했는지 대답해준다.
미리 인터넷을 검색해 자기가 지니고 싶은 물건의 가격 대비 장단점을 훤히 꿰고 산다.
클린턴 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에 따르면 이제 전통적 의미의 시민 혹은
유권자는 사라지고 말았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소비자와 투자자이다.
월마트 같은 대형 할인점은 소비자와 투자자의 힘을 등에 업고 거대한 증기롤러처럼
세계 경제를 밟고 지나가면서 모든 것의 비용을 찍어 누른다.
소비자 혹은 투자자가 유권자의 자리를 대신하는 현상은 전세계에서 목격할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대선과 총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대선에서 유권자는 도덕성이나 공공의식보다는 후보의 기업인 경험을 높이 샀다.
총선에서 서울 강북의 유권자는 뉴타운이라는 한마디에 ‘묻지 마 투표’를 했다.
시민, 유권자로서보다는 소비자, 투자자로서 의사 결정을 했던 것이다.
광우병 파동에 즈음해 누구보다도 빠르게 10대가 움직인 것을 보며 온 사회가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다.
청와대나 여당뿐만 아니라 배후라는 의심을 받았던 야당이나 진보 진영도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경제적인 면만 보자면 우리나라의 10대야말로 월마트가 찍어 누르는 체제에
가장 익숙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소비자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는 세대이다.
그런 그들에게 께름칙한 상품을 강요했으니 튕겨나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청와대나 여당은 그들을 그 자리로 밀어 올린 바로 그 불가항력에 정면으로 맞선 꼴이다.
출처 : 시사IN 35호 편집국자의 편지